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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3: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막 3: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막 3: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막 3: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막 3: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막 3: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오늘은 오늘 읽었던 막 3:1-6(마가복음)을 떠오르는 대로 정리해 보았다.
일기를 대처해 본다.
-내용 : 예수님이 한쪽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신 내용
회당에 한 쪽 손 마른 사람이 있었다.
예수님을 그를 보자 불쌍히 여기시고, 고치시길 원하셨다.
예수님의 관심은 그 사람이 나아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데에 있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어딘가 불편하면 취직하여 돈을 벌기가 어렵다.
그리고 어디에 정상적으로 소속되기가 쉽지 않았다.
신약이 기록된 시대도 같았다.
어딘가 한 곳이 불편하면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온전한 생활을 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계셨던 주님은 항상 사람들을 고치시길 원하셨다.
이날도 아픈 사람이 있었고, 고치시길 원하셨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점은 그 사람이 나아서, 이제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는데 있었다.
이 날 같은 장소에 또 다른 무리가 있었다.
이들은 예수님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예수님을 고발하려던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의 관심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사람을 고치는지, 안 고치는지에 있었다.
아픈 사람에게 동정의 마음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픈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아픈 과거를 지녔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직 관심은 안식일에 예수님이 병든 사람을 고치는지, 아닌지에만 있었다.
(유대교에서 안식일에 병든 사람을 고치는 것은 일하는 것에 속한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죄를 범하는 것으로 치부하였다.
예수님은 이것이 잘못되었음을 말씀하신다.
막 3:1-6 말씀을 통해, 진정한 안식일의 뜻을 설명해 주지만, 유대인들은 고정관념에 빠져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본문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진정한 안식일이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사람을 고치는 일이 선을 행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진정한 안식일이 이런 선을 행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지만, 유대인들은 고정관념에 빠져 알아 듣지 못하였다.)
즉, 그들의 관심과 예수님의 관심은 달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그들의 관심에 자신의 초점을 맞추셨는가?
아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관심(아픈 자들 낫게 하는 것)과 자신의 관점에 포커스를 맞추신다.
그리고 그렇게 말씀하시고, 행동하신다.
그렇다면 행동만 하셨는가?
아니다.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3중 사역을 중요시 여기셨다.
그중 가르침은 중요한 순간에 항상 나온다.
이날도 그냥 고치신 것이 아니라 먼저 가르치신다.
어느 것이 옳으냐고 물으시면서 가르치신다.
(막 3: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이렇게 물으시고, 행동으로 옳은 답을 주신 것이다.
바로 손을 고치심으로 답을 주신다.
이것이 맞는 답이다.
너희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고정관념이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답을 보고도 깨닫지 못했다.
왜?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지 못해서.
그 모습을 보고 예수님은 탄식하셨다.
(막 3: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하나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사태였다.
올바른 답을 보여주어도 알지 못하는 모습을 보시고 탄식하신다.
이 글을 잃는데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전에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한 적이 있다.
용서라는 주제로 전하였다.
내용은 이러하였다.
성경은 우리에게 용서하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용서를 해도 되고 안해도 된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명령어로 용서하라고 원어에 되어 있다고 말씀을 전하였다.
그러니 용서를 꼭 해라고 말씀을 전하였다.
그리고 왜 용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쭉 설명하였다.
후에 그 말씀을 듣고도, 사람들은 용서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유는 목사님이라도 내 처지에 있으면 용서하지 못할 거라고.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했는지 아냐고, 어떤 말을 했는지 아냐고..
난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말씀을 전하였음에도, 그렇게 살지 못하겠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는데 탄식이 나왔다.
내 나이 40을 넘었다.
순탄하게 살아온 것은 아니다.
나도 남에게 듣지 못할 이야기, 행동들을 받아왔다.
하지만 항상 용서하였다.
처음에가 힘들지 점점 괜찮아졌다.
나도 내가 듣기에 용서하지 못할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행동들을 받았다.
하지만 용서하였다.
왜?
내가 목사라서?
성인 군자라서?
아니다.
나는 성인군자도 아니고, 목사로서도 많이 모잘라다.
나도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고, 평생 용서하고 싶지 않은 마음들이 일어난다.
하지만 용서한다.
이유는 하나기 때문이다.
성경이 그렇게 이야기 하기에.
하나님의 관심과 예수님의 관심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간다.
살아갈 때 우리의 관심과 목표는 성경에서 말하는 것과 같아야 한다.
나의 생각과 성경의 생각이 다르다.
누가 고쳐야 하겠는가?
하지만 많은 경우 이렇게 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남들도 나의 경우라면 이렇게 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
교회에서 대다수가 그렇게 행할지라도,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왜?
내가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교회에서 다수가 아니다.
정말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다수가 아니다.
왜?
자신의 본성을 거스리기 때문이다.
성령을 받았어도, 인도하여도 많은 사람들이 본성을 거스리면, 따르지 않는다.
교회의 소수의 사람들은, 다수와 다른 길을 간다.
나는 실제로 본다.
많은 사람들을.
그리고 그 사람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를 본다.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자신의 관심대로 살아간다.
자신의 본성대로 산다.
즉, 하나님의 관심과 반대로 간다.
이럴 때 생각해 봐야 한다.
나는 올바로 가는 것인가, 아닌 가를.
성경과 반대로 간다면 조심해야 한다.
내가 신앙 생활을 바로 한다고 착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면, 예수님은 나의 모습을 보시고 탄식하실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믿음과 삶에 대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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