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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의 인도하심 (마지막)
제목 : -우리안에 계신 성령님,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님
우리는 인생에서 많은 결정을 해야한다.
어떻게 하면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을까?
내가 가장 올바르게 선택했다고 생각해도 틀릴떄가 많다.
머리를 오랜 시간 써서 한 결정들도 틀릴 때가 많다.
그렇다면 어떻게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어떤 선택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결과물들을 줄까?
그건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행하는 선택이 가장 좋은 선택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걸 할 수 있을까?
누가 일일이 우리의 선택에 관여할까?
하나님은 과연 우리의 선택에 관심이나 있으실까?
하나님은 정말 아주 중요한 우리의 결정에 대답하실까?
대답은 예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다.
우리의 사소한 말들, 중요하지 않을 결정들, 중요한 결정들 모두 존중하신다.
그리고 개입하길 원하신다.
하지만 사소한 결정들은 우리의 의사를 존중하신다.
예를 들어, 햄을 먹을까요, 새우를 먹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질문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우리가 맛있게 먹는 것을 좋아하시므로?
남색 옷을 입을까요, 빨강색 옷을 입을까요라는 질문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가 입는 옷들의 종류를 좋아하신다.
다만, 여성의 경우 남성들이 유혹받을 수 있는 옷들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
남성들이 죄를 지을 수 있는(눈으로 보면서 죄를 짓게하는) 옷들은 피하는 것이 좋다.
다만,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할 때 예를 들어 면적을 보았는데 두 회사 모두 붙었을 때, 어디를 가야 할까,
혹은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이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들은 하나님께 물어보고 응답을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실까?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 구약의 선지자와 신약의 선지자의 차이부터 시작하자.
구약의 선지자, 신약의 선지자의 차이
구약에도, 신약에도 선지자가 있다.
같은 역할을 하였을까?
같은 종류의 일들을 하였을까?
답은...
아니요이다.
구약의 선지자와 신약의 선지자들을 다른 역할을 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구약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종류의 사람들은 세 부류이다.
왕, 제사장, 선지자.
세 부류의 사람들만 기름부음을 받았다.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
그럼 신약에서는?
하나님은 요엘에서 예언하였듯이, 예수님을 주로 시인한 사람들 모두에게 임하신다.
즉 성령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신다.
그럼 성령님이 구약에서 무엇을 하셨는지부터 살펴보면 된다.
그리고 어떤 분이신지 알면 된다.
성령님은 우선
1. 모사, 모략의 영이시다.
즉 어떤 일을 행하는데 모사를 펼치신다.
제갈공명보다 훨씬 뛰어나시겠지?
이 세상에 있는 어떤 사람보다 뛰어나시겠지?
그러니 가장 좋은 계략을 아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그런 계략을 우리에게 알려주신다.
2. 구약의 선지자는 무엇을 하였는가?
구약에서는 성령님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지 않으셨다.
왕, 제사장, 선지자에게만 임하셨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감동을 느낄 수가 없었다.
다른 말로는 성령님의 인도를 개인이 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지자들을 찾아가서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지 물어야 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사사기에 나오는 사무엘의 경우이다.
사람들이 사무엘을 찾아간다.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서였다.
사무엘 뿐만 아니라 에스겔에서도 나온다.
왕이 어떤 뜻을 묻기 위해 선지자들을 모아 묻는다.
(당시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듣긴 했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선지자들에게 전해 주셨다.
그 역할을 하는데 성령님이 계셨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3. 그렇다면 신약의 선지자는 구약의 선지자들과 같은 역할을 감당하는가?
어떻게 생각하는가?
답은 아니다이다.
신약시대는 구약과 다르다.
선지자에게 임한 성령님이 믿는 모든 자 위에 계신다.
그러니 선지자를 찾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물을 필요가 없다.
신앙의 초기에는 잘 모를 수 있으니 물을 수 있다.
하지만 년수가 차고, 시간이 흘렀으면 이제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도록 개인이 그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럼 나는 잘 하는가?
아니다.
항상 기도하고, 묻지만 자주 틀린다.
이 주제를 쓴 이유는 한 설교를 들었기 때문이다.
굉장히 큰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님의 설교를 요약하고, 내 생각을 더하는 중이다.
이 큰 교회 목사님도 말한다.
자신도 하나님의 뜻을 묻는데 많이 틀린다고.
하지만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오래 기도하고, 올바른 결정들을 내릴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 이유는 우리안에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여튼 이제는 신약의 선지자들을 찾아가서 구약처럼 인도를 구할 필요는 없어졌다.
신약의 선지자들이 자신이 선지자들이라면서 구약처럼 사람들 위에 군림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 역할이 달라졌다.
군림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피해라.
우리도 충분히 인도 받을 수 있다.
4. 그렇다면 기도에 대한 응답을 어떻게 옳다, 아니다로 분별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성령님의 감동이라면서,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한다.
이것이 옳다, 아니다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
답은 공명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감동이 된다.
눈물이 난다.
굉장히 기쁘다.
평안하다.
내 안에서 무언가 깊이 감동한다.
이것이 공명이다.
그럼 하나님이 말씀하셨을 확률이 높다.
성령님의 감동을 받았다고 하는 말들을 다 믿을 필요가 없다.
내가 기도하면서 감동 받으면 된다.
내가 받은 내용과 다르면 굳이 그들의 말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특히 예언한다고 하면서 부정적인 내용만 이야기하는 사람 곁에는 가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망치시는 분이 아니라, 고치시는 분이시다.
이런 경우는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잘못을 하고 있어서, 하나님이 그 부분을 지적하길 원하신다.
그럴때는 이런 부분에서 잘못하고 있어라고 말씀하실 수 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나올 부분이 이 부분이다.
하나님이 그 부분을 지적하고 계신다.
너가 그 부분을 고친다면, 이런 좋은 결과를 얻게 하실 것이다.
(예언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이다.
심판만 있지 않다.
회복을 항상 명하신다.
하나님이 구약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심판하신 이유는 그들을 멸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을 올바른 길로 들어서게 하기 위해서였다.
말을 듣지 않는 어린아이를 훈계해서 바르게 살게 하기 위해서와 같은 이유다.
그 후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축복들을 실컷 내리시길 원하셨다.
그들에게 축복을 하실려면, 그들의 그릇이 준비되어야 했다.)
여튼 글이 길어지고 있다.
이제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차례이다.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기도에 대한 올바른 대답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는 다음과 같다.
어떤 주제에 대해 기도하고 있다고 보자.
그 주제에 대한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데 평안하다면 그것이 바른 길로 가는 열쇠이다.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데, 불안하다, 점점 무섭다, 좋지 않은 감정이 든다면 그것은 틀린 길이다.
기도하는데도 잘못되는 것은 오래 기도하지 않아서이다.
굉장히 유명한 기도의 목사님이 계셨다.
이 목사님은 어떤 응답을 받기 위해 적어도 1시간 30분, 혹은 몇일을 기도하신다.
왜?
올바른 응답을 듣기 위해서다.
몸과 생각, 마음이 준비되기까지 보통 방언으로 1시간 반은 기도해야 한다고 하신다.
오랜 시간이 흘러 그 시간이 단축되지만, 처음에는 적어도 그렇게 기도하셨다.
대답을 듣지 못하면 몇일을 방언으로 기도하셨다.
기도하다보면 그 주제에 대한 생각들이 들기 시작한다.
계속 기도하다보면 그 생각이 확신이 들기도 하고, 점점 명확해진다.
그럼 그 생각대로 하다보면 점점 더 잘하게 된다.
묘사의 성령님을 경험하게 된다.
경험이 쌓이고, 기도하다보면 확신들이 들기 시작한다.
이렇게 경험을 쌓아가야 한다.
말씀도 많은 시간 경험과 준비, 나의 시간이 필요하듯, 기도도 그렇다.
이제는 남에게 묻는 아이의 신앙을 벗어나 성장하는 사람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