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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갈라디아서 2장

정보 김씨 2023. 5. 5.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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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갈라디아서 2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2장에는 많은 내용들이 나오지만 우선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묵상한 내용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우선 2장에서는 첫 째로, 자신이 전하고 있는 복음어떤 내용인지를 예루살렘에 있는 지도자들에게 설명합니다.

이유는 이후에 설명하겠습니다.

 

둘째로, 예루살렘에 있는 지도자들이 바울을 인정합니다.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하나님이 바울을 사용하시어 이방인 전도자로 세우신 것을 알게 됩니다.

 

셋째로, 바울이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를 책망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내용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묵상 내용을 더하겠습니다.

 

 

 

 

 

1. 바울이 자신이 전한 복음을 예루살렘에 있는 지도자들에게 전하였다.

 

2절) 예루살렘으로 간 것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거기에서 교회의 지도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들과 따로 만나서 내가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복음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전에 한 일이나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헛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쉬운성경)

 

우선 바울이 예수살렘에 간 이유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바울은 교회 지도자들을 만납니다.

그 지도자들에게 자신의 복음을 설명합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 입니다.

우선, 바울이 전도하고 있던 이방 교회들에게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잘못되었다고 전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배운 것이 아니라 계시로 배웠습니다.(갈라디아서 1장편 참고)

그러니 사람들이 이것을 가지고 태클을 걸었던 것이지요.

 

바울을 공격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말을 듣고 흔들리는 이방인 교회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바울은 자신의 복음이 옳다는 것을 확인해 주어야 했습니다.

그 일을 갈라디아서 2장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복음을 설명하고 있던 예루살렘 교회에서 누가 있었냐고 하면, 2장 9절에 나오듯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 그리고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였던 요한,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바울의 복음을 듣고 옳다고 인정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이 바울의 복음을 인정하면, 바울을 공격하는 사람들의 말들은 힘을 잃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바울의 복음을 인정한 후에도, 이들은 바울을 계속적으로 공격하였다.)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예수님의 12 제자들 중 일부도 있음)바울의 복음이 옳다는 것과, 하나님이 바울을 이방인에게 보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2. 예루살렘 지도자들(예수님의 12제자 중 베드로와 요한도 있음)이 바울을 인정함

 

(갈 2:7) 오히려 그 지도자들은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해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신 것처럼, 내게도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기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갈 2:9) 지도자로 인정받던 야고보와 베드로 와 요한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특별한 은혜를 깨닫고, 바나바와 나를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여, 그대들은 이방인에게 가십시오. 우리는 유대인에게 가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갈 2:10) 그들은 우리에게 한 가지, 곧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그것은 사실 내가 힘써 해 오던 일입니다.(쉬운성경)

 

우선 바울그곳에 있던 지도자들을 언급합니다.

9절에 나오듯, 야고보, 베드로, 요한의 이름을 언급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 요한은 예수님이 사랑하셨던 제자, 야고보는 예수님의 형제(야고보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조금씩 다릅니다. 누구는 예수님의 형제라 하는 사람이 있고, 다른 사람은 다르게 해석하기도 합니다)의 이름을 언급합니다.

왜 이 이름들을 나열하였는지 생각해 보시면 답은 간단하게 나옵니다.

바로 이 이름들에게는 권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인정하였다는 것예수님을 믿던 교회들이 인정하였다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님이 바울과 바나바를 이방인에게 보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이방인에게로 가십시오. 우리는 유대인에게로 갈게요.'

 

그러면서 한 가지를 더 당부합니다.

바로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해 달라는 것이지요.

이것은 바울이 원래 해 오던 일이라고 성경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3.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함

 

갈라디아서 2장에는 굉장히 신기한 모습이 나옵니다.

바로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한국 정서로 보면 할 수 없는 일이지요.

 

베드로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살아 계시던 당시 예수님과 함께 하였고, 동거동락하였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사의 산 증인이며, 예수님의 수제자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런데 비해 바울은 그렇게까지 인지도가 없었던 인물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성경을 많이 기록하였고, 계시도 많이 받았던 인물로 기억하지만, 당시 그 시대 상황, 그리고 그 시간을 두고 보면 바울과 베드로의 갭 차이는 굉장히 컸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바울은 베드로를 책망합니다.

왜냐고요? 

베드로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그 문제 사건이 갈 2장에 나옵니다)입니다.

그래서 이등병이 병장을 혼내는 그런 모습이 나옵니다.

 

예수님 말씀 안에서는 이런일이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말씀 안에서는 위 아래가 없습니다.

 

상대가 수제자일지라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나이가 어린 아이일지라도 그것을 말해 주어야지요.

 

그럼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이방인과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지금 베드로는 예루살렘이 아닌 바울이 있던 안디옥에 와 있습니다.)

(갈 2:12) 베드로가 안디옥에 와서 이방인들과 함께 먹고 있는데, 

 

그런데 멀리서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유대인)이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갈 2:12) 야고보가 보낸 유대인들이 오자

 

그러자 베드로가 같이 밥을 먹고 있던 사람들과 밥을 그만 먹고 그 자리를 뜹니다.

이유는 야고보가 보낸 사람들이 유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갈 2:12) 베드로가 안디옥에 와서 이방인들과 함께 먹고 있는데, 야고보가 보낸 유대인들이 오자 먹는 것을 그만두고 그 자리에서 물러갔습니다. 그들은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쉬운성경)

 

이해가 어려우시지요?

 

이것은 구약을 보태야지 이해가 됩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유대인)은 이방인과 밥을 먹는 것을 금지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선택받은 민족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이방인과의 교제, 밥 먹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이방인식사를 하거나 교제하는 것은 죄로 보았습니다.

이것이 구약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신 이후로 이 법은 없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이방인이건 유대인이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모든 사람이 평등해 졌기 때문입니다.

그럼, 유대인안디옥 사람들(이방인)과 밥을 먹는 것은 죄일까요?

 

구약이라면 죄가 되겠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이후기 때문에 더 이상 죄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이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디옥에 있는 이방인들과 밥을 먹다가 유대인들이 오자 밥먹는 것을 그만두고 도망간 것입니다.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베드로의 삶을 조금 살펴보아야 합니다.

 

즉 베드로의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의 삶을 이해해야 합니다.

베드로유대인이었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이방인과 밥을 먹으면 죄가 된다고 말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다 예수님을 만나고, 십자가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이방인이건, 유대인이건 예수님 앞에서는 평등하다고 알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베드로의 평생의 선입견(유대인이 이방인과 밥을 먹으면 죄가 된다)는 것이 그렇게 쉽게 벗어 졌을까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선입견이 그렇게 쉽게 벗겨질까요?

그렇지 않겠지요.

평생을 살아온 습관이 그렇게 쉽게 벗겨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베드로의 습관과 선입견으로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 문제였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이 사건의 분명한 점은 베드로가 복음 안에서(진리 앞에서)는 잘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사람들 앞에서 잘못하였으니, 바울은 이것을 사람들 앞에서 분명하게 한 것입니다.

바울에게는 진리가 세워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베드로가 수제자이고, 더 높은 권위가 있으니 넘어갈 만하지 않을까.

혹은 지도자의 수치를 덮어 주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닐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베드로가 행한 행동은 복음의 진리를 훼손시킨 것입니다.

 

십자가가 한 것은 이방인과 유대인의 거리를 없앤 것입니다.

베드로가 한 행동은 그 십자가 사건을 훼손시키는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 새파란 후배 바울일지라도, 진리를 훼손하는 것 앞에서는 당당히 서서, 대 선배인 베드로를 나무라고 있는 것입니다.

바르게 행동한 것이지요.

 

 

 

묵상

 

오늘의 묵상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교회는 진리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담임목사의 유명세, 좋은 설교, 혹은 찬양 리더자의 역량등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말을 잘하고, 사람들은 잘 이해시키는 목사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목숨을 내주시며, 세웠던 진리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그 진리를 훼손시킨다면, 그 위대했던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일지라도 수치를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나이가 들고, 신앙의 경륜이 오래되면 진리를 더 많이 알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많습니다.

 

베드로처럼 자신의 선입견으로 의외로 쉬운 진리들을 보지 못할 경우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경우들을 많이 봅니다. (연세가 있으신데도, 성경 말씀을 보여드려도 자신의 선입견을 믿습니다.)

그럴 경우, 그런 분들이 옳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대로 가야 합니다.(싸우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현명하게 대처하십시오.)

 

담임 목사님의 말씀을 잘 분별하시길 바랍니다.

수제자인 베드로도 틀릴 때가 있습니다.

저도 성경 공부를 하지만, 제 선입견으로 말씀 한 구절을 오랫동안 오해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 구절만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잘 분별하십시오.

 

그리고 자신을 보십시오.

보통 자신은 자신을 잘 보지 못합니다.

자신이 선입견을 가지고 성경을 보고 있다는 것을 인지조차 못합니다.

 

많은 성경 해석서(옥스포드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습니다. 성경 전체가 아니라 한권부터 시작하십시오)를 보면서, 성경을 연구하십시오.

그러다 보면, 자신의 견해들이 깨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베드로도 책망받았습니다.

그러니 내 안에는 얼마나 잘못된 선입견들이 많겠습니까.

열심히 공부하며, 더 진리에 가까워 지시길 바랍니다.

 

 

2023.05.03 - [말씀묵상] - 갈라디아서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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